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 ::

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자라기'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7/18 기록해야 쌓이는 노하우 by 김진애 (2)
  2. 2008/07/11 고딩 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by 김진애
  3. 2008/05/15 '선생님 영화'가 대히트쳐야 한다 by 김진애 (3)
  4. 2008/04/29 죽을 때까지, 자라는 단계들 by 김진애 (3)
  5. 2008/04/18 잘 놀려고 공부하는 6가지 비결 by 김진애 (10)
  6. 2008/02/22 대학에서의 자라기, 대학의 자라기 by 김진애 (21)
철거 시장 오세훈?

오세훈 서울시장이 철거전문가가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 안했었다. ‘문화시장’을 자처하고 ‘디자인 서울시장’을 지향한다고 천명한 오세훈 시장이 이럴 줄이야. 철거 서울시청 기습철.....

'딸‘은 완벽하다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

나라 망신시키는 6가지 요령

요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다. 국제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뿐 아니라, 해외비즈니스, 유학, 여행 뿐 아니라 해외상품에 대한 구매를 하고 인터넷으로.....

휴가지 ‘베개’ 잃어버린 소동

“어머나, 내 베개!” 차는 마산시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이겠다고 뒷좌석에 던져둔 베개를 집으려다가 깨닫고 말았다. 이런, 호텔에 두고 왔구나. 나에 대한 비밀.....

Document your own history.
자신의 성장을 가장 성의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자기여야 한다.
자기 기록이란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의 역사가 바로 자신’이라는 말은 확실히 진리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 잠재력, 성장력 역시 과거의 경험과 준비에서부터 출발한다. ‘새 출발’이란 말을 사람들이 즐겨하지만 그 새 출발 역시 과거의 역량에 뿌리를 둘 때 가능하다. 기록이란 자신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 080718 새벽 '공적 기록'에 대한 김진애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적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 최근의 2개 사건은 '독도'와 '대통령 기록 논란' 아닐까요?  
 
지도기록의 중요성: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16세기 후반 '팔도총람' 고지도. 지도란 국가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 고지도들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우리 무엇으로 독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겠습니까?  


대통령 기록의 중요성:
전임대통령들 기록을 다 합해도 33 여만건에 불과한데, 노무현 전대통령은 830여 만 건을 남겼다는 사실을 보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공적 기록문화가 얼마나 부실했던 가를 알수 있지요.  대통령기록은 이제 시작이라해도 다름없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폐해와 민족분단에 따른 후폭풍, 독재정부의 나쁜 유산이 '기록을 둘러싼 왜곡과 그에 따른 피해들'이었지요. 기록문화가 자라기 너무도 어려운 환경이었지요.  

나라의 공적 기록이 쌓여야 나라의 노하우도 커지겠지요.
일본이 치밀하게 기록을 쌓아올려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을 보면 무섭기조차 하지요? 우리 모두 차분하게 우리의 공적기록을 당당하게 쌓아올려야 할 터입니다.

개인의 기록이나 나라의 기록이나 노하우의 기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일상의 기록 방식에서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요령은 다음 몇 가지다.
--------------------------------------------------------------------

1. ‘사건일지’를 쓰자. 수첩, 작업노트, 업무일지에

‘사건’이라니까 무슨 큰 일 같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두가 사건 아닐까? 정기적인 사건, 가령 수강시간, 정기모임에서부터, 비정기적인 것까지 쓰는 것이다. 쓴 시간, 만난 사람, 주요 내용 등을 써놓는 것이 좋다. 이것은 마치 스냅 사진처럼 나중에 기억하기를 도와주기 위해 필요한 것인 만큼 간략할수록 좋다.

개인의 ‘사건일지’가 공식화된 것이 직장의 ‘업무일지’이고, 직장의 업무일지가 개인화한 것이 ‘개인의 업무일지’다. 그만큼 일지란 시간 생산성과 작업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필요하다. ‘시간 생산성’을 따져야 살아남는 시대이니 만큼, 각 개인의 시간 생산성과 또한 조직 전체의 시간생산성을 따져보기 위해서 업무일지는 꼭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신만의 일지 비법을 만들자. 내 경우는 작은 수첩인데 나의 공식 기록이 거의 다 담겨있다. 전자수첩보다 훨씬 더 긴요하다. ‘문서’로 남기 때문이다. 일주일 단위로 넘길 수 있는 이 수첩에 나의 프로젝트, 글쓰기, 모임, 만난 사람들이 그대로 수록되어, 연초면 지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계획하기에 그만이다. 이 작은 수첩에는 ‘나의 심경’도 ‘나의 암호’로 기록한다. 나만이 해독할 수 있는 일지다.
--------------------------------------------------------------------
2. 기록은 쌓여야 노하우가 된다. 일정 기간 쌓자.

기록이란 쌓여야 자료가 되는 만큼 모으기가 중요하다. 수첩, 작업노트, 업무일지, 강의노트, 참고자료, 공문서, 프로젝트 진행 공정, 현장 감독일지, 주문서, 회의록 등, 일정 기간 쌓아올리고 일정 시기에 다시 들여다보자. 다시 들여다보는 시기는 목적에 따라 다르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주기가 될 수도 있고, 학기, 학년, 프로젝트 마무리 같은 ‘일’ 관련 주기도 있고, 또는 첫 직장, 전직, 결혼, 아기 탄생 같은 개인사적으로 중요한 주기가 될 수 있다. 필요할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료, 그것이 기록이다.
--------------------------------------------------------------------
3. 남이 봐서 알 수 있는 기록이 진짜 기록이다

개인의 기록이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 자신을 위한 기록이 되려면 역설적으로 남이 봐도 도움이 되는 기록이어야 한다. 바로 ‘자신의 객관화’다. 일기나 편지 같은 개인적인 기록이 주로 감성과 의식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업무에 관한 기록이란 ‘객관적 사실’을 담는 것이 요체다.

객관적 사실을 남이 보아도 알 수 있게 만드는 기록을 해보자.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왜, 어떤 목적으로 등 ‘육하원칙’에 철저하고 평이한 용어로 쓴 기록은 기록적 효용성이 높다. 사실 육하원칙 중에서 ‘왜’와 ‘어떤 목적’에 대해서 순수하게 기록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바탕에 있는 함의까지도 다 쓰려면 기록 자체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의 요령은 이렇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을 구체적으로 쓰고, ‘제목’을 구체적으로 달아서 ‘왜와 목적’에 대한 단서를 담는다. 물론 가끔은 나의 사적 언어로 암호처럼 ‘감상’도 써넣는다. 나중에 기억을 회복할 때 좋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
4. 어느 순간에도 작업을 보여줄 수 있게 준비하자

‘작업의 기록’이란 무척 중요하다. 자신의 발전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고, 자신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필요하며, 또 남에게 자신의 작업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더욱 명심할 것이라면, 일부러 자료를 준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과정 그대로를 언제나 보여줄 수 있는 작업 태도이다. 바로 ‘기록이 축적된 작업 태도’이다. 남에게 무엇을 보려주려 하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요’라고 하거나 그 때부터 준비하려 들 것이 아니라, 작업의 단계별 진행 상황 그대로를 들고 가서 작업 내용과 고민과 과제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작업 기록 태도가 중요하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당시의 자기를 안다는 것이 자라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록을 전제로 일하는 방식을 일부러 하자고 하면 무척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몸에 배는 습관을 만들고 나면 매일매일의 작업이 그대로 쌓여 자신의 노하우가 된다. 엄청난 파워를 키우는 버릇이다. 익히자.

--------------------------------------------------------------------
부디 기록하라. 귀찮다고 생각하면 자라지 않는다.
매일매일 기록에서 노하우가 쌓인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트랙백 주소 :: http://jkspace.net/trackback/15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eter153 2008/07/18 09:1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세요...

  2. 조영선 2008/07/29 09:4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기록하다가 멈추고 다시 기록하기를 반복했는데 이제 계속 써야겠네요.김선생글을 통해 느슨해지는 생활을 다시 고치는 계기가 되곤합니다.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었습니다. 오랜만의 고교 나들이였습니다. ‘열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도서관 담당 선생님’의 성의 가득한 초청 덕분이었습니다. 전북대 캠퍼스 바로 옆에 붙어있어 분위기가 삼삼했던 전주 사대부고, 학생들의 에너지가 가득하더군요.

학생들 질문이 이어지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 질문.

“고등학교 시절에 하루 몇 시간 공부하셨어요?”

가방끈이 꽤 긴 저인지라 궁금했던 모양이지요? 아님, 요즘 학생들의 평소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말일 겁니다. “공부 더 해야 하는데, 나는 남들보다 공부를 적게 하는 게 아닌가, 몇 시간을 공부해야 맞는 것인가?”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요즘 학생들 참 안됐습니다.

그날 제가 한 얘기한 요점들.

1. 공부는 집중이 중요하다.

2.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 정도?
(집중하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반 정도? 그렇다면 최대한으로 따져도 12시간 정도일 뿐. 실제 돌아보세요. 하루에 그 이상으로 공부하는 적이 있는지? 제가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워커홀릭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 만나기, 자료 체크하기, 회의하기 등을 포함해서입니다. 그런 주변 시간도 집중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마는.)

3. 학교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 공부해야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어리석은 짓 하지 말자.

4. 자신의 공부 스케줄은 자기가 짜고 자기가 해야.
(선생님의 입력은 일정 수준이 지나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이 말 하니까 학생들 와르르 웃더군요. 실제 그래요. 공부는 자기 수준에 맞추어 자기식으로 해야 합니다.)

5. 잠을 제대로 자야 합니다. 자면서 뇌에 새겨 기억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시간이요? 평균 6-7시간은 최소입니다. 실제 돌아보세요. 낮잠에 빠지는 것, 조는 것도 다 잠입니다. 제 경우 밤에 5-6시간, 낮에 1시간 정도로 구분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이지요.)

이 외에도 또 있습니다.

6. 진짜 공부란 호기심이 발동해야 한다.

7. 학교 공부 지나치게 잘하면 자칫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실례를 불구하고 말하자면 기껏 의사나 변호사? 교수? 그렇게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맞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직업은 워낙 풀이 작다 등.)

선생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학원 선생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부모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전달이 되었을까요?

*** 부모님, 선생님들께 드리는 말씀 ***

아이들, 너무 오래 공부 시키지 마세요. 너무 질리게 책상 앞에 붙들어 놓지 마세요. 어른들 하루에 일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효과도 없습니다. 집중이 안되잖아요?

아이들, 너무 학원 많이 보내지 마세요. 학원 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면 자기가 공부할 시간 줄어듭니다. 그러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아이들, 꼭 성적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성적은 어차피 1등도 있고 꼴등도 있고. 하지만 이 세상에 해야 하는 공부, 이 세상에 해야 하는 일을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 080711 김진애 생각.

고 2때까지 주로 놀았지만, 고 2겨울방학부터 딱 1년 동안 독하게 공부만 했었습니다. 제가 꽤 자랑하는 시절인데요.^^  돌아보면그 때도 하루 14시간 정도가 최대였지요. 자는 시간, 밥먹는 시간, 왔다갔다 하는 시간 들이 꽤 많이 들지요.

그날 강연 때 학생들 질문 중 인상깊은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확실한데, 꼭 학교를 다녀야 할까?"라고 질문하던 똘망똘망 눈망울의 여학생 질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다들 똑같은 과정만 밟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풍부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0 교시 부활이다. 학원 자율화다, 학교 자율화다 하면서 아이들을 그저 책상앞에 붙들어놓으려 하는 요즘 세태, 이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교육, 상업주의적 교육이지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트랙백 주소 :: http://jkspace.net/trackback/154

  1. Subject: [소립자] 김진애 씨가 말하는 '고딩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Tracked from 스튜디오 판타지아 2008/07/11 14:15  삭제

    김진애 씨가 말하는 "고딩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1. 공부는 집중이 중요하다. 2.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전체 공부시간의 반 정도. 따라서 효율적인 일일 최대 공부 시간은 12시간. 3. 학교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 공부해야 4. 자신의 공부 스케쥴은 자기가 짜고 자기가 해야 5. 잠 제대로 자기. 밤 5~6. 낮 1시간 6. 진짜 공부란 호기심이 발동해야 한다. 7. 학교 공부 지나치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선생님 영화'는 '성장 이야기'다. 아이들도 자라고 선생님도 같이 자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구에서는 선생님 영화가 꽤 많다. 히트작도 무척 많다.

<<선생님께 사랑을(To Sir with Love)>>이 나에게 첫 선생님 영화였고(영국을 배경으로 한 흑인 교사 이야기),

<<죽은 시인의 사회>>는 청소년 시절의 선생님을 다시 생각케하면서 대히트를 쳤고,

<<굿윌 헌팅>>은 MIT가 배경이 되어 더 흥미로웠고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 학생의 재능을 발견해주는 선생의 역할에 감동을 먹었고,

<<파인딩 포레스터>>는 청소년 성장 소설로 50년 이상 베스트셀러라는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가 오랜 은둔생활을 했다는 것에 착안되어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 히트작들이다. 이 외에도 성장을 다룬 선생님 영화가 꽤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의 '선생님 영화'는 히트작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 글을 쓰다가 깨달았다. 확 기억에 남는 선생님 영화가 없다.

재미있게 본 <<내마음의 풍금>>은 풋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선생 김봉두>>는 지나치게 코미디스럽다는 것이 좀 유감이었다.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대중적 선생님 상에도 풋사랑 이미지가 덧칠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주역이고, 이른바 '꼰대스럽다'는 선생님을 조롱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것(예컨대 <친구>)을 보면, 우리 문화에서 '제도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 아닐까? (일제강점기,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제도권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깊다는 것도 작용할 터이고.)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되었는데, 우리의 '좋은 선생님 영화'를 기다린다. 영화의 문화 영향력에 기대해보고 싶은데... 좋은 소재도 많을 터이다. 그 어려운 시대를 거쳐오면서 선생님이 없더라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왔겠는가? 새로운 변화, 아이들 눈높이 맞우고 아이들 편에 서서 같이 자라는 '좋은 성장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인기 있었으면 좋겠으련만. 선생님과 아이들이 같이 성장하는 영화를 기다려본다. 선생님 영화가 대히트를 친다면, 우리 사회도 뭔가 내공이 깊어진다는 뜻 아닐까?




요즘 새삼 생각나는 선생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3년 동안을 같이 했던 선생님이다.

‘과외 선생님’ 보다는 ‘그룹 리더’라 하면 맞을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네다섯 학생들과 만나서 반은 놀고 반은 공부했다. 공부를 잘 가르쳤는지 아닌지 당시 나로서는 판단이 안 선다. 3년을 계속했다면 잘 가르쳤기 때문 아니었을까.

홀로 외아들을 키우던 ‘열심 엄마’가 이 그룹을 만들었다. 단칸방 한켠에서 조용히 바느질을 하던 그 엄마는 우리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툇마루에서 선생님과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곤 하셨다.   

선생님이 나에게 남겨 주신 세 가지 특별한 기억.

첫째 기억, 우리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다.

말하자면 현장 교육이다. 많이 놀러 다녔고 영화도 보러 갔다.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던 군인 부대에 위문을 갔던 것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버스 타고 타달타달 걸어서 고생은 죽도록 했는데, “아, 저 군인 아저씨가 선생님 애인인가 보다!” 하고 번갯불처럼 깨달았던 순간. 나에게 남녀 관계의 묘미를 일깨워주셨다고 할까. 

(*** 물론 우리들은 그 때 '얼래리 꼴레리'하면서 선생님을 놀려댔다.^^
연애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둘째 기억, ‘한자’를 배우던 각별한 분위기다.

한 획 한 획 마치 그림 그리듯 하고, 부수의 어원을 가르쳐주고, 한 부수 한 단어마다 관련 단어들을 뜻으로 찾아보던 기억. 마치 ‘퍼즐 조각 맞추기’ 하듯이 신났었다. 열 살 내가 너무 멋있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 덕분에 나는 그 또래에 비해서 한자에 상당히 능숙해졌는데, 이 실력은 언제 발휘되었나 하면, 10여 년 전 미국 친구들 30여 명과 중국 여행을 하면서 한문으로 된 메뉴를 보고 주문하던 때다. 그림처럼 생긴 한문을 보고 뜻을 풀이하는 나를 보고 그 미국 지식인들은 내가 마치 라틴어를 하는 듯, 존경스런 눈으로 봐줬다.^^)

셋째,‘초청 강사’를 수시로 부르셨던 기억이다.

아마 당신 친구들 아니었을까? 한번은 어떤 분이 오시더니 우리들에게 자기 왼손을 스케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어설픈 손 그림을 보고 하나하나 우리의 성격을 해석해주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내가 뭔가 해낼 듯 싶어서 그 날 밤은 가슴이 두근두근 했었다.   

(*** 내가 그린 왼손을 보고, 그 선생님이 하는 말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 '맺을 듯 말듯한 선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 5학년 학생에게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덕분에 나는 아직도 계속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모양이다.)


                                          ***

왜 요새 이 선생님이 새삼 생각날까. 『자라기』라는 화두에 몰두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끊임없이 자라기,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기, 이왕이면 재미있게 자라기’ 같은 비법을 스스로 깨닫게 한 것은 바로 이 선생님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 그 때 그렇게 같이 한 3년, 그런 의미였구나!” 


‘젊은 리더’로서 어린 나에게 스스로 뭔가 하도록 깨우쳐 주신 선생님. 지금은 어디 계실까? 그 군인 아저씨와 결혼은 하셨나? 전공은 뭘 하셨던가? 성함은 무엇이었을까?(성함도 모른다. 우리에게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누구에게 뭘 깨닫도록 하고 계실까?

당신에게 나 같은 어린 제자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까?
무럭무럭 자라고, 지금도 열심히 자라고 있고,
또 젊은이들의 ‘자라기’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게 만드는데
당신이 한 역할을 아시기나 할까?

선생님은 얼마나 소중한가? 특히 어릴 때의 선생님이란….  


*** 080515 스승의 날에 김진애 생각

요즘 선생님들 너무 힘드시지요. 예전보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훨씬 더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초중고 학생들이 광우병 촛불문화제에 많이 참여하고, 학교당국과 교육청은 하지말라고 지도하라고 하고, 궁여지책 '교복은 입고 가지 말라'고 하신다고 하고, 혹시나 무슨 일 생길까 싶어 걱정하신다는 얘기를 주변에서도 많이 듣습니다. '같이' 참여한다면 더 좋을 텐데요.

선생님, 아이들이 현장에서 스스로 깨닫고 배우게 해주세요.
초교시절 저의 선생님, 오늘 각별히 더 생각납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같이 자라는 좋은 세상을 꿈꿉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트랙백 주소 :: http://jkspace.net/trackback/49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8/03/15 23:4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사실 진짜 가슴 떨리게 하고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내는 교육은 단순한 것일텐데요..

    학교 현장에서 중학생들과 창의적 재량을 진행하며 부딪혔던 어려움은
    결정적으로 제 자신의 미숙함 탓이겠지만
    아이다운 천진함을 죽이며 지식을 주입해온 교육체계 탓도 무시 못하겠죠...
    진짜 중1때 저요,,저요, 하고 손들고 엉뚱한 질문을 해대던 녀석들이
    중3땐 입에 지퍼를 채웁니다...ㅜ.ㅠ

    상상력과 단순한 열정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만남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힘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skyworker 2008/05/15 14: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교육자가 소위 말하는 제도권의 대변자 역할을 하던 70-80년대에도 실력과 소신, 열정을 갖춘 멋있는 선생님들은 계셨지요.

    건방진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많지 않았던 존경하는 소수의 선생님들이 각 급 학교별로 떠올려집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신데, 어쩌면 나이가 마흔에 접어드는 즈음에 큰 사고는 안치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말씀처럼, 진짜 교육자에 대한 영화가 한번 나와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끄러운줄 모르고 똑똑한 국민을 오도하는 철없는 '政治者'들이,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본인들을 가르치신 선생님이 얼마나 가슴아파 하실지를 생각하게도 좀 되었으면 하구요.

    선생님들은 이 사회의 소금이고,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국민들이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들입니다. 불신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래도 선생님들만은 신뢰하고 존중하는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5/1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앞서 태어난 분, 앞서 산 분)의 지혜'에서 배울 줄 알고 나눌 줄 알려면, 신뢰와 존경이 근본이 되얄텐데요,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자꾸 깨져서 걱정입니다. 촌지 얘기로 물들고 상품권 뉴스가 나오는 스승의 날, 이래서 되겠습니까? 오늘 몇 분들과 점심하는 중에 우리 영화 중에 좋은 성장 영화가 없다는 것, 좋은 역사 영화도 없다는 것, 너무 시장사회에서 코미디물이 많아지는 것이 지나치다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근 중국 영화 <Still Life> 가 그렇게 좋다면서... 우리 사회에 '돈, 돈, 돈' 만하지 말고, 건강한 가치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역할이 크지요. 스카이워커님.

사람은 계속 자란다.
죽을 때까지 자란다.
이렇게 여기면 우리는 현재의 자신에게 훨씬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40대라면 80세 이상 살 가능성이 높다.
2030세대라면 90살까지, 10대라면 100살 이상 살 가능성도 높다. 그야말로 백수시대다. 이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살까?
6․3․3․4(+2)년 공부하고 55∼65세 즈음 퇴직할 때까지 하나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15∼20년 열심히 일하고, 40대 중반쯤부터 어쩔 수 없는 퇴직 인생을 살게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확실한 사실이라면, 우리는 ‘물리적 수명은 길어지고
기능적 수명은 점점 짧아지는 패러독스’
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과 함께 살려면 인생이든, 공부든, 프로 생활이든, 자신의 수준을 자꾸 높이는 작업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단계를 생각해 보자.
 

(누구일까? 아시지요? 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자랐는지.
2008년 초 강연에서 드디어 '사회철학가(social philosopher)라는 평까지 듣게 된 빌 게이츠. 그렇습니다. '철학'은 중요합니다. '사회의식'은 중요합니다.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는 사람, 어떤 단계까지 갈까요?)


인생에는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 (학교) 공부를 통해 준비된 나를 써 먹는 단계

둘째 단계: 나를 써 먹으며 생긴 노하우로 자신의 ‘업’을 세우는 단계

셋째 단계: 남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업(業)’을 세우는 단계

넷째 단계: 자신‘만’을 위해서 새로운 업을 만드는 단계

공부하기에도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 아는 게 뭔지 모르는 게 뭔지 잘 모르면서 막무가내 들이 파는 단계

둘째 단계:‘아하’하면서 더 알고 싶고 질문이 자꾸 더 생기며 재미를 느끼는 단계

셋째 단계: 마치 구름 위에 오르고 숲이 보이는 듯 전모가 보이고
            자신의 한계도 알게 되는 단계

넷째 단계: 드디어 자신이 궁금한 문제를 만들어 이모저모 들여다 볼 수 있는 단계

프로로 일하기에도 분명히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 주어진 일을 100% 잘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는 단계

둘째 단계: 다른 일과의 전후좌우가 보이면서 110%의 효과를 보며 일하는,
            아주 재미나는 단계

셋째 단계: 처음부터 끝까지 전모가 보이고 구조와 요소를 파악하며 일의 리듬을 타는 단계

넷째 단계: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의문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일을 위한 구상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단계


죽을 때 까지, 나는 어떤 단계에 있나?

자신의 단계를 담담하게 인정한다면,

얼마나 모자란 지 오히려 마음 편해지고,

아직도 자라기 단계가 더 많다는 깨달음에  오히려 가슴이 설렌다.
 
배우자, 자라자, 평생토로!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트랙백 주소 :: http://jkspace.net/trackback/10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8/04/29 11: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4/29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은 주제가 있을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제 블로깅만해도 벅찬데, 바실리카에는 시사 주제가 적절할 것이므로... 시사 글은 '선택'에 시간이 많이 듭니다. 쓸 거리가 너무도 많은 요즘이라 고민중이랍니다. 이렇게 써서 뭐하나 하는 회의도 들곤 하고요, 도대체 들을 자 어디 있나 싶기도 하고요,,, 요청 감사합니다.

  2. 2008/04/29 22:0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얼마 전 나는 다 큰딸로부터 기분 좋은 칭찬을 받았다.
8주 동안 외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오더니, 한다는 말.

“엄마한테 고마웠어. 문화적으로 키워줘서. 아주 멋지게 놀았어.”
짬짬이 그 도시의 미술관, 박물관, 다운타운 명소들을 신나게 누빈 모양이다.
“이제 온 세계에 친구 깔아 놨어!
에티오피아, 아일랜드, 이탈리아, 러시아 등” 온 세계 학생들과 ‘온 캠퍼스’와 ‘오프 캠퍼스’ 친구를 삼았단다.
“요리는 역시 잘해야겠어.”
멋있게 보이려면 요리도 필수임을 알게 되어 반갑다.
“엄마 말대로 불어 공부 좀 더 할 걸.”
불어를 알면 좀 더 보이는 게 많을 것 같더란다.

나는 일갈했다. “글쎄, 잘 놀려면 공부 제대로 해야 한다니까.”

***

‘나의 교육 방침’을 ‘피교육자(?)’인 자식이 모처럼 인정을 해 주니 감격할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교육’이라는 말을 영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이른바 ‘공식 교육계’에 종사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문답하기, 해 보기’ 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보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우리 식으로 풀자면,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해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고’ 갔던 것 아닐까?

물론 내가 한참 자랄 때는 잘 놀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누가 얘기해 주었더라면 아마 잘 놀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온갖 소설에 빠진 덕분에 나는 역사, 세계사, 지리, 사회 과목들에 흥미를 가졌다. 이들 과목들은 소설 속에 엉켜 있는 사건들과 지명을 연결시키고 확인하는 도구였다.

영화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영화와 소설은 이렇게 극화를 했구나 또는 이렇게 틀렸구나 알아맞히는, 일종의 ‘숨은그림찾기’ 같은 게임이었다.

나는 영어 노래 듣느라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해도 좋다. 중고 시절 내내 켜 놓고 살았던 AF(K)N 라디오 덕분에 영어 귀가 틔었던 것이다. 우리말 라디오는 너무 잘 들려서 집중에 방해되고, 심심하니 노래는 듣고 싶고 해서 틀어 놓았던 영어 방송, 하루는 연속 드라마의 내용이 드디어 들렸다. 그 순간의 깜짝 놀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다음 드라마 시간을 기다리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은근히 자랑스러웠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고 자랑 꽤나 하는 불어. 그런 자랑은 지나치다 싶지만, 그 분위기에 말려서 고등 시절에 일부러 학원까지 다니며 드디어 그 유명한 『어린 왕자』를 원어로 읽어 내는 짓까지 했다. 한때의 열중에 불과했지만, 나의 열중은 큰딸의 불어 공부를 도와줄 때 기막히게 사용되었고(딸의 행적을 팔아서 내 자랑을 하자면, 첫 시험 45점짜리 딸이 다음 시험 94점을 받았다.) 딸이 이제야 깨닫게 된 것과 같이 내가 문화를 맛보는 데 지금도 소용이 닿는다.

***

두 가지 공부를 안 해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첫째, 우리 전통 악기 하나 배우지 못한 것. 단소나 대금 하나 배웠더라면 외국 사람들 앞에서 산조 한 가락 멋들어지게 뽑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기타 들고 피아노 한 수 하고 색소폰 부는 것보다 더 멋질 텐데.

둘째, 태권도를 못 배운 것. 왜 나의 시대에는 여자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없었을까.(지금도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없는 힘이나마 요령껏 쓰는 방법을 터득하면 남자들 앞에서 훨씬 더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을.

역시 ‘풍류(風流)’는 알아야 하고 ‘문무(文武)’는 겸비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