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받는 첫 번째 문화적 충격.
“어떻게 이렇게 고층아파트가 많을까?”
알고 나면 오는 둘째 충격. “고층아파트가 그리 인기 있는 집이다?”
좀 더 알고 나면 받는 셋째 충격, “고층아파트 값이 그렇게 비싸다?”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상을 외국인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 교수는 이 문화적 충격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그가 쓴 <아파트 공화국> 책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서울, 거대한 촌락, 빛나는 도시(Sѐeoul, ville gėante, cites radiėuses)』을 단행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프랑스 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프랑스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파리에서는 고층 아파트 단지를 도심 한가운데 세우는 법이 없다.
둘째, 그 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사는 집으로서는 인기가 없다.
셋째, 그 아파트 단지들은 우리처럼 자가 소유주택이 아니라 공공임대아파트(국민주택)다.
‘고층아파트 단지’는 오히려 프랑스가 지적 소유권(?)을 가졌다고 할만도 하다. 『빛나는 도시”(Les Villes Radieuses』(일종의 뉴타운이다.) 라는 제안을 통해 기존 도심의 밀집된 주택가를 허물고 고층아파트를 세우는 일은 20세기의 도시건축사조의 리더인 건축가․도시계획가인 르 코르뷔제에 의해 제기되었다. 파리의 오래된 전통 시가지를 없애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를 듬성듬성 세우고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주거환경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 ‘빛나는 도시’ 개념은 그 발상지인 프랑스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그랑-앙상블(Grand Ensemble)’ 또는 ‘씨테’라 불리는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까지 주택부족을 해결하느라 도시 외곽에 세워졌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유럽 대도시들과 미국의 대도시 일부에 이런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빛나는 도시’ 개념을 계승한 셈인데, 70년대 이후에는 입주 기피, 안전 문제, 범죄 문제, 부정적 이미지 등 완전 실패로 판명되어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대신 파리에서는 자족성이 보완된 신도시 정책으로 바뀌었고 5개 신도시가 세워졌다.
(초기의 파리 신도시 고층 아파트. 우리 고층아파트보다 고층도 아닌데, 영 인기가 없다. 마르네라발레 신도시다.)
그 5개 신도시에는 초기에는 고층아파트들이 상당히 들어섰다. 그런데 그 신도시들의 최근 개발들을 보면 무척 다른 경향을 보인다. 1990년대에는 중층 아파트로 많이 바뀌더니, 21세기로 들어와서는 ‘빌라’ 비슷한 저층 주택들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고층 아파트는 인기가 없다.
***
(마르네라발레 신도시의 최근 주택단지. 이제 고층 아파트는 안짓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실패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왜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대한민국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가장 성공적인 ‘히트 국민상품’이라고도 할 만 하니 말이다. 줄레조 교수는 간명하게 그 이유를 포착한다. 대한민국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한마디로 ‘국가주도상품’이자 ‘국민재테크상품’이라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대량주택생산, ‘1가구 1주택’ 구호로 대변되는 ‘주택소유정책’, 정부와 재벌 기업 간의 긴밀한 관계”가 주도했고 그 수혜자인 중산층의 ‘재테크 메커니즘’이 뜨겁게 호응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서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단지들은 급격한 성장모델의 객관적 표현이다. 이는 재벌과 손을 잡고 국토의 구조와 한국의 경관을 책임진, 강력한 정부에 의해 집단적인 방법으로 고안된 모델이었던 것이다.”(127쪽)
줄레조 교수는 도입된 이래 한동안 환영받지 못하던 아파트가 1980년대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문화적 현상에 주목한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보편화되었고 ‘중산층으로의 성공으로서의 상징’으로서 ‘아파트’가 떴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과거를 등진, 철저하게 새로운 사회의 출현과 연결됐다. 이는 결국 ‘탈피하다’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대로 ‘껍질을 벗은’ 사회였다.”(193쪽) ‘새로운 삶을 새로운 아파트에 담는’ 문화 현상이 주류가 된 것이다.
***
줄레조 교수는 학자의 비판의식을 견지하되
한국 아파트의 미래에 대하여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제기한다.
첫째, 저자는 대한민국의 아파트 성장사에 진정한 의미의 공공임대주택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부 영구임대주택이 생겼을 뿐이다)을 지적한다. 고층아파트가 많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싱가포르나 홍콩에서는 공공임대아파트가 주된 구성인 것을 볼 때 자성할 부분이 많다.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주택정책 기조’는 적어도 공공 부문에서는 상당한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둘째, 저자는 고층아파트로 토지이용밀도를 높인다는 계획 발상에 대한 회의를 표시한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도심의 도시형 주택의 밀도가 ‘씨테’의 고층아파트 단지 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예시하며, 용적률 제고라는 명목상의 목표는 고층단지 개발을 촉진하려는 부동산개발업, 건설업, 정부의 이해가 맞물린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부동산 경제 수단으로서만 다루어진다면 바람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등 전문 역할이 위축되고 결국은 그 결과가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저자는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의 지속가능성 여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고층 아파트가 더 이상 중산층의 구별 짓기 수단이 되지 못할 때, 단지는 급격히 사양화되고 도시문제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줄레조 교수의 문제 제기는 이미 서구에서 급격히 사양화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일본 도시의 경우에서도 보이듯 선진 사회에 진입할수록 대량생산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줄어드는 현상은 주택 정책과 도시 정책에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참 희한한 현상이다.
뉴타운 정책은 이 희한한 현상을 더 희한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이 <아파트 공화국>이자 <뉴타운 공화국>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 에피소드
발레리 줄레조 교수가 1990년 대 한참 서울의 아파트 연구를 할 때, 여러 번 만나서 길게 토론한 적이 있다. 책에서도 나와의 교류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학문적 열정도 그러하였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인상적이어서 더 여러 번 만났던 것 같다. 물론, 여성 전문가의 동지의식, 도시사랑하는 전문가의 동지의식도 작용하였다. 멀리 있지만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하신다. 언젠가 또 만나서 우리의 사는 문화를 얘기해야지!
그런데, 줄레조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의 뉴타운 쟁점, ‘아파트촌의 정치성향’, ‘제 집값 올리는 투표를 한다’는 성향에 대해서 어떤 분석을 내릴까? 사람은 아파트를 만들고 아파트는 또 다시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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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입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 싱가폴에는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비 정상적인 구조의 집이 없습니다. 한국에 한 번씩 다녀 갈때마다 느끼지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메두사같은 서울을 보면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더군요..어떻게 좀 사람이 일을 하고 돌아가면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조차도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있는 입만 열면 세계 십대 경제대국이니 하는 대한민국의 언론도 이해가 안가고요..제발 님같은 분들이 힘내셔서 대한민국의 도시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좀 만들어주시와요..특히 선생님 기억나는 부분은 예전 한국살때 토론 프로그램에서 용적률 관련해서 한 번 나오셨을때 아주 인상적이었던 터라 기억합니다.
싱가폴 주택도시성(HDB) 방문했을 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주거가 삶을 만든다'는 철학도 그렇고, 고층아파트 리노베이션 현장도 인상적이고... 싱가폴은 전체적으로 우리보다 밀도가 높은에도 불구하고 시원하지요. 아파트 자체보다 공공공간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공공성'이 살아있기 때문이지요. 공공주택, 임대주택에 대한 확고한 정책, 우리 사회에서 빠져있는 것이지요. 우리 공공임대 재고? 5%도 못된답니다. 이런데 무슨 선진국 운운할 수 있는지. 그런데, 점점 더 욕망의 개발정치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라 정말 걱정됩니다. '시장주의'를 빙자한 정책의 최소한의 공공성의 실종. 국민들이 깨달을 때쯤 되면 너무 늦을까 걱정됩니다. 하용인님, 싱가폴은 '에너지'를 너무 쓴다는 점에 대해서 한번 체크해주시지요.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냉방에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냉방 없이 살기 어려운 기후환경이지만...
나름 선생님 팬인데..이렇게 답글을 올려주실 줄 몰랐습니다.흐뭇^^
참 에너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데이터를 체크해보진 않아서 생활적으로 밖에는 모릅니다..일년 연평균 기온이 항상 에어콘을 필요로 하는 건 맞더군요, 특히 여기 계신 많은 한국분들이 감기를 조심할 정도로 상업지구-은행이나 관공서 백화점등등-등에선 정말 추워요.특히 영화관 갈때 점퍼는 필수죠..그런데 저는 그런 에너지 문제에 대해선 생각해보진 않았구요-이열치열 주의자-
그런데 싱가폴의 문제는 아주 많은 플라스틱 백을 소비하고 일회용이 난무한다는 겁니다.
분리수거 또한 없고 아마 말레이시아에 버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싱가폴은 어쨌든 깨끗하죠....적절한 비유는 생각안나지만 오직 자기만 깨끗해야 한다는 주의랄까요..
암튼 답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당선되는지 정말 눈여겨 보았어요..정말 아깝더군요...선생님 T.V에 자주 출연하세요.-부탁입니다. -제발 그 말도 안되는 억지로쓰시는 분들을 논리로 무장해제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전 엔지니어지만 선생님 글 보고 있음 건축이란 참 멋진것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아마 새벽에 이 글 보시겠지요..바쁘신데 이 글에는 덧글 안달아주셔도 되요..^^해외 동포 참정권 있었다면 아마 민주당은 싫어했어도 선생님 때문에 정당 투표를 민주당으로 했을지 모르겠군요.
안녕하세요 진애님,
프랑스에서 도시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응원해주는 건축인 아버지가 진애님의 블로그를 메일로 보내준 덕에 이렇게 방문해서 여러 주제의 재밌는 글들 신나게 읽고 갑니다.
멋지십니다. 본보기로 저의 앞날을 그려봅니다.
한국을 벗어나 살게 되니 한국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정치를 잘 모르고 사회를 모르다가 프랑스에 살면서 보이는 우리와 다른 점들에 의문을 갖게되면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게 왜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높기만 하고 특징없이 따닥 따닥 서있는 아파트를 선호할까?
또 한국을 방문한 몇몇 사람들에게서도 한국의 아파트주거문화에 대한 질문들을 받습니다. 발레리 줄레죠 그녀도 책에 썼듯 단순히 국토는좁고 인구가많아 아파트밖에 좋은 해결책이 없었다라고 말하기엔 왠지 뭔가 부족했었지요.
발레리 줄레조의 글을 다 읽지 않았지만, 위의 블로그글에 요약된 데로 아파트 주거문화에 의문을 갖는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주거정책과 재테크 문화의 배경을 섞어 그들이 이해할 만한 답을 줄 수 있을 것같습니다.
나라가 더 발전하고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면, 획일된 아파트 아닌 다른 형태, 좀 더 인간스케일과 다양성이 추구되는 주거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을까요? 아님 이미 한국에 일반화된 아파트공화국이 이어질까요? 주거 수요가 항상 넘처나는 현실속에서 엄청나게 지어진 아파트 들이 지금의 프랑스처럼 사양화될 날이 올까요? 30년전에 지어진 아파트도 허물고 새로 다시짓는 입장에서, 환경문제을 논하며 이미 지어진 것은 지키고 거기에 리노베이션 하고, 덧붙여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롭게 재생산하는 새로운 건축주거문화를 이야기하는건 너무 간 크고, 꿈 큰 이야기 인가요?
이상, 미래의 도시건축인으로 나라 걱정을 나름 다 하고 있는 꿈 큰이었습니다.
좋은 아빠 부럽군요. 미래의 좋은 도시건축인 되시기를. 주거문제는 사회의 거울인지라,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아주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럼에도 원칙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원칙은 제대로 세워지질 못해서. 핵심은 공공성, 공공주택인데, 자꾸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정권의 시장주택 편향성이 어디로 갈지...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