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완벽하다
- Posted at 2008/07/17 11:08
- Filed under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남성여성인생가족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사바사’ 재미있고,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우니 감동적인 순간들이 훨씬 더 많고, 집안일도 상대적으로 잘 도와주니 그야말로 살림 밑천이고, 나같이 독한(?) 엄마의 딸 처지에서는 의식주 해결하는 독립 시점이 훨씬 더 빨라지게 마련인데 딸들은 입이 삐쭉 나올지언정 잘 받아들여 준다.
이른바 출가외인이 되어도 마음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같이 놀아 주는 시간이 더 많다.(그렇지 않은 출가외인은 반성하시라.^^) 게다가 요즘처럼 부모 공양은커녕 그저 손 안 벌리는 자식이 되는 것만도 고마운 시대에는 아들 존재의 효용성은 훨씬 줄어들었다. 기둥뿌리 흔드는 아들이 안 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딸은 퍼갈지언정 기둥뿌리 흔들기까지는 안 하거나 못하는 듯싶다.^^
게다가 딸 잘 키우면 근사한 사위 아들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나의 장난스러운 표현마따나 ‘존재만으로도 괜히 피곤한 시어머니’가 되는 것보다 ‘존재만으로도 괜히 푸근한 장모’라는 지위를 은근히 즐기다가 가끔씩 ‘못된 장모’가 되어 보는 게 더 재미있을 듯싶다.^^
며느리에게 항상 고마워해야하고 은근히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 지위란 영 달갑잖다. 아무리 시답잖은 며느리라 할지라도 아들보다는 훨씬 더 실질적인 수고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어떻게 고맙지 않고 어떻게 미안하지 않으랴.(시어머니이기도 한 나의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이해시키려 열심히 노력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영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며느리가 있는 처지보다는 사위가 있는 처지가 백 배 낫다는 나의 정서적 계산법이다.
이리저리 굴려 봐도 딸이 낫다. 오직 한 가지 안 좋은 것이라면, 장례식에서의 ‘상주’ 역할인데 여자가 상주를 서면 어색해하고 안쓰러워하는 정서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장례 문화도 엄청나게 바뀌고 있으니 여자 상주에 대해서 훨씬 더 너그러워지리라.
딸딸 엄마아빠가 이렇게 축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딸 키우는 도전은 만만찮다. 어릴 적에는 낫지만 머리 커지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도전거리가 생긴다.
전형적으로 ‘역량 중심적 생각’을 갖고 있는 이 현실적 엄마 아빠는 수시로 여성의 사회적 제약을 환기시킨다. 딸의 진로 상담을 해 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위치가 제약이 되느냐 기회가 되느냐에 대해서 따끔하게 얘기해 준다.
아직 ‘원론 중심’적 사고를 가진 두 딸은 이러한 현실적 엄마 아빠를 질책하기도 하고 우리 역시 속으로는 적잖이 반성을 하면서도 ‘알고 택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이 있으랴. 모험은 좋은 것이지만, 계획 없는 모험, 준비 안 된 모험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라 객기일 뿐 아닌가.
우리 집에서 한 가지 다행인 상황은 그 누구도 결혼 변수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적어도 결혼 때문에 커리어에 영향 받지는 말자는 것이 묵계처럼 되어 있다.
물론 이 엄마 아빠는 “결혼은 안 할 거니? 결혼이라는 엄청난 생활충격을 어떻게 견딜 거니?” 라는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두 남녀의 젊은 시절 고민. ‘결혼은 했겠다, 떨어지지 않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가, 비용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시간은 어떻게 나누어 쓸 것인가.’ 얼마나 시시콜콜하게 고민했던가. 일보다 공부보다 오히려 결혼이 훨씬 더 어려웠었다.
아이를 일찍 낳지 않겠다는 요즈음 여성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나의 젊은 인생 역시 훨씬 더 쉬웠었을 것이다. 유학 갔던 첫 해에 큰딸을 열 달 동안 키워준 우리 엄마의 ‘크디큰 배’를 닮을 자신도 없는 나이고 보면, ‘결혼은 늦게, 아이는 하나’ 라고 주장하는 딸딸의 생각에 고마워해야 할까?
‘아예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이 엄마를 저 아빠는 꼬나보곤 한다.^^ 여하튼 자식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 보는 것은 아주 즐겁고, 딸을 통해 이 힘든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세대가 다른 딸의 인생은 나의 인생과 그렇게 다를까? 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세상은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예전보다 잘살기는 하지만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훨씬 더 심해졌다고 할까. 선택할 것은 훨씬 더 많고 정보도 더 많지만, 여전히 선택 자체는 힘들기 짝이 없다.
여자 조카 하나가 아이 넷을 낳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서 가상하다고 보훈 훈장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속사정은 ‘딸 소망’이다. ‘아들-아들-아들’ 다음에 드디어 딸이 나왔는데, 이 부부의 감격도 감격이려니와 온 집안 전체가 축제 무드에 빠졌단다.
“완벽해, 완벽해!” 시아버지의 탄성이란다. 그렇다. 딸은 완벽하다. 딸 가진 엄마 아빠, 행복해하자. 딸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 보자.
지난 주에 한 번, 그저께 또 한번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한번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여성들, 또 한번은 구만리 같은 여성들을 후원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인데요. 여성들을 만나면, '어떤 모델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려야 안할 수 없지요. 그리스의 수많은 신들에는 그런 완벽한 모델이 있지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지혜의 여신 아테네. 흥미롭게도 3 여신 모두 으뜸 A로 시작하지요? Aphrodite, Artemis, Athena. 3가지 다 가져보지요. 아름다움은 기본, 전투력은 필수, 지혜는 평생토록.
제가 요새 여성들에게 얘기할 때, 두 가지는 빠지지 않습니다. 작금의 환경이 결코 여성들에게 녹록치 않다는 것.
첫째, 경제환경. 치열한 생존경쟁과 무자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세계자본주의, 보수적 자유주의에서 여성 전반이 힘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
둘째. 정치환경. 현 이명박정부가 균형잡힌 여성정책을 커녕 여성정책 자체가 빠져있고, 관심조차 별로 없다는 것. 자칫 여성을 '들러리, 꽃꽂이'로 여기는 퇴행이 우려된다는 것.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 딸들, 건투해나갑시다.
(이번 미국의회도서관의 '독도'를 '리앙쿠르록스'로 표기 변경시도를 사전 막아낸 사람이 토론토 동아시아도서관협회 회장 김하나 님, 뉴스에서 보니 담담하고 당차게 일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이시더군요. 꾸준하게 성실하게 당차게 용감하게 일하는 딸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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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애, 딸, 아르테미스, 아테네, 아프로디테, 여성, 여성정책, 인생은의외로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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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들(고1) 딸(중1)있는데요..솔직히 딸이 더 좋습니다. 왜냐고요? 삐삐뽀뽀 해주잖아요...ㅎㅎㅎ... 무더위에 잘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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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아들 태어났으면 서러워서 살겠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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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딸딸이 엄마인데 글읽고서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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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기분좋아지시면 참 기분 좋지요? 제가 아들이 있었으면 '근사한 남자'를 세상에 선사할 수 있을텐데 하곤 했지만, 아들 키우는 부모를 보면 정말 쉽잖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삐삐뽀뽀' 해주는 딸, 그만큼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어서 가깝게 느끼는 거겠지요. 딸 있는 집안은 사근사근, 소곤소곤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아들있는 집안은 시원시원? 여하튼 아들만 둘있는 집에서는 엄마가 자칫 외롭고, 우리 집같이 딸만 둘 있는 집에서는 아빠가 자칫 외로워질 수 있으니, 서로 배려해주는 맘도 필요하지요.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즐거움을 만끽하세요. 블로거님들. -
남자는 혼자 목욕탕가서 등 밀어줄 아들이 없으면 많이 슬퍼하지
그리고 사위가 아들이라고 사위는 친 어머니라고 생각 할까요?
님이 시어머니를 친 어머니라고 생각 안하는것 처럼 사위도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걸 명심하세요-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참 선조들의 지혜인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장모는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고, 물론 며느리와 사위는 그렇지 못하지요. '의무'로 얽힌 관계가 되니까.. 아들 보다 딸이 더 편한 관계가 되는 것도 딸에게 덜 의무를 지우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요새는 아무래도 노후의 자식 의존도가 줄어들게 되므로 아들이 갖는 부담도 덜하게 하면서 더 마음 편한 관계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지요. 자식들도 독립, 부모도 독립. 그래야 더 멋진 관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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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둘이면 금메달이네요. 그런데 조카분 대단하셔요. 시아버지의 완벽하단 말씀은 아들 셋이 앞서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60대 이상의 로망 아닌가요...아들 셋에 딸 하나.
요즘에는 점차 고부갈등을 겪는 집이 예전보다는 적어지는 것 같아요. 아예 시집과 멀리 하고 사니까. 대신 점차 모녀갈등을 겪는 친구들이 많아요. 노후의 엄마들이 딸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놀아줘' 모드로 나오는 데 비해, 딸의 성격이 무뚝뚝해서 또는 사정이 그렇지 못해서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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