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국토부 '4대강 마사지' 오보 사건-트위터 혈투

어제 저녁부터 충남/충북도지사가 4대강사업을 찬성한다는 오보가 나오기 시작해서, 지난 밤 직접 충남정무부지사, 충북도지사 전화 통화 확인하고, 국토부에 보낸 공문도 확인한 후에.....

금강 진짜 살리기- 민주당 4대강사업대안-2

- 민주당 4대강사업대안 '진짜 강살리기' 계속, 금강 부분입니다. - 금강 4대강사업의 불필요한 사업(보 건설, 대형준설, 저수지 둑높이기 등)을 중단하면 8,245억 절약.....

이포보 고공농성현장, 국회의원도 못들어간다?

7월 22일 새벽,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남한강 이포보와 낙동강 함안보 현장을 점거하고 항의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혹시나 발생할지도.....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이라 알고 있던 것을 잃어보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한 젊은이가 유쾌한 메일을 보내왔다. 나의 집이자 사무소를 찾으러 골목을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힌트는 세 가지란다. ‘시장 근처일 것, 큰길가는 아니고 어느 골목일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살고 일할 것 같은 인상의 집일 것.’

“스토커는 아닙니다.”라는 단서와 함께 보내 온 이 유쾌한 메일. “주소로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저는 이 집 찾기 놀이를 하면서 한참 더 헤매며 놀렵니다.”

그 젊은이의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된다. 행간에서 힌트가 잡힌다. 20대 중반, 키는 멀대처럼 커서 허우적댈 듯싶고, 모자는 물론 썼고, 가방이나 배낭은 물론이고, 큰 주머니 주렁주렁 달린 옷을 걸쳤을 듯싶다. ‘도시 속의 유목민’ 같은 모습이랄까.

그 젊은이는 나의 집을 찾았을까? 후속 메일이 없으니 나는 그저 그 젊은이가 여전히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고 있으리라 상상하련다. 그의 탐정 놀이는 즐겁기 짝이 없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을 잃으면 무언가 다르다.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
평소에 잠자던 온갖 감각이 발동된다. 느낌이 새삼 생생해진다.
민감해진다.
머리가 돌아간다.
모든 것이 단서로 떠오른다.
탐정이 된다.

집의 크기와 모양은 물론, 간판이며 가게 종류, 다니는 차와 주차한 차의 종류와 숫자, 나무와 풀과 돌, 꺾인 길과 휘돌아 가는 길과 막다른 길의 생김생김이 모두 단서다. 길 가는 사람들마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차림을 하고 다니는지, 아이들이 다니든지, 어르신들이 있는지, 어느 시간대에 사람이 많은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지, 이 모두가 단서가 된다. 냄새에 흠흠 대고,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발부리에 부딪히는 쓰레기마저도 심상찮다.

모르는 길이란 그렇게 몰라서 매력적이고 무엇이 펼쳐질지 몰라서 매혹적이다. 여행 갈 때 너무 꼬치꼬치 계획을 세우고 가면 재미 반감, 모험 반감인 것과 같은 이치다. 펼쳐지는 장면에 자신을 맡기고,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것이 좋다.

마치『천로역정』의 순례자처럼 진실을 찾는 마음으로,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처럼 천연덕스러운 호기심으로,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땅속 지옥의 온갖 모험을 마다 않는 오르페우스처럼 말이다. 위험은 그저 위험일 뿐, 그 위험을 알아채는 요령도 곧잘 터득하게 되고, 위험을 피하는 방법은 물론 위험을 헤쳐 가고 즐기고 활용하는 비법도 익혀 가게 된다. 모험도 역시 몸에 익어 가는 것이다.

길을 잃는 목적은 막연한 것이 좋을 게다. 길을 찾는 방법은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 호기심은 왕성하면 왕성할수록 좋다. 배짱은 두둑해야겠고 두둑하지 않으면 ‘두둑한 척’이라도 하면 된다. 다리야말로 튼튼해야겠다. 비상금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정 안 되면 한두 끼니 양식거리나 물통 하나쯤 넣어 두면 된다.

무엇보다도 혼자인 것이 좋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몰라서 좋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는 쉽게 혼자가 된다. 그 혼자 있음이 축복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름길, 바른 길, 맞는 길’을 찾는다.
‘넓고 훤한 길’을 택하려 한다.
‘아는 길, 편한 길’을 가려 든다.
그러고는 그 유명한 시구처럼 ‘가지 않은 다른 길을 그린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나 아닐까. “그 길로 갔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길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그 길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찜찜한 마음으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네 인간은 워낙 겁이 많거니와 비겁하기조차 하다. 그러니 무턱대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라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그렇게 부추긴다고 해서 영악한 우리들이 그리 쉽게 길을 잃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부러 길 잃어 보기’ 전략은 어떨까. 그리 위대하거나 모험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극히 인간적(?)인 전략이라고나 할까.

첫째, 목적지는 알되 찾는 과정에서 잃어 본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의 가운데 토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흩뜨려 본다고 할까. 직장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집 가는 길 사이사이에서 말이다. 잘못하면 아예 새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즐겁지 않은가.

둘째, 지도는 지니되 보지 않고 간다. 마치 나의 집을 찾는다는 앞의 젊은이처럼 말이다. 머리를 동원하면 금방 찾는다는 믿음을 가지되 먼저 ‘감(感)’을 동원하는 것이다. 평소 잠잠하게 숨어 있던 감의 훈련도 될 뿐더러 오감과 육감을 즐길 수 있게 될 게다.

셋째, 일정 시간을 아예 길 헤맴에 쓴다. 여행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모르는 곳에 자신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수없이 많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번 아예 아무 정거장에서나 내리고 일부러 모르는 동네에서 헤매 본다.

넷째, 남몰래 길을 잃어봐야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의 탐험, 나의 모험에 대해서 은근한 비밀로 간직하고 있으면 마치 자기의 보물 지도를 하나 가진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마치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그 언젠가 내가 탐험한 것을 드러낼 때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일부러 길 잃어 보기’가 너무 소극적인가? 마음 같아서야 다 떨쳐 버리고 전혀 모르는 길로 가보고 싶다마는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간의 한계 아닌가?

그래도,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애쓰고, 바른길, 옳은 길, 좋은 길, 아름다운 길만을 찾으려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때때로 길 잃기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훨씬 인간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런 모험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어쩌다 길에서 마주칠 때의 그 안도감이란. 아, 나 같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아직도 모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아직도 이 세상에 진짜 사람이 있구나 하는 그 뿌듯한 기분이란...
(무지개 까지 뜨면 더욱 좋다.....).



물론 우리는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잃는다는 행위는 곧 길을 찾기 위한 단서를 찾는 행위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이 자신이라 알고 있던 것을 잃어 보는 것이다.
     길을 다시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던 나, 내가 모르고 있던 나, 내가 되고 싶던 나, 또 다른 나.......
.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 , , , , , , ,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Trackback URL : http://jkspace.net/trackback/70 관련글 쓰기

« Previous : 1 : ... 297 : 298 : 299 : 300 : 301 : 302 : 303 : 304 : 305 : ... 35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