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될 ‘명예’나 있습니까?
- Posted at 2009/04/16 08:38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정치의 가치
<백분토론> 초대 사회, 고 정운영 교수의 멘트였다. 1999년 시작한 백분토론,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 낙선운동’에 대한 토론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열띠게 펼쳐지자, 사회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데, 훼손될 명예나 있습니까?” 하고 날렸다.
지금 사회자가 이런 말을 했다가는 아마 바로 다음날 잘릴 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워낙 정치부패가 심각하고 정치개혁 열망이 뜨거웠던 시절에, 중후한 사회자로서 날릴 수 있는 말이었다. 반성은 없이 명예훼손을 그렇게 열렬하게 부르짖는 정치권에게 '반성하라'는 유머담긴 멘트였다.
좌중은 한바탕 웃음으로 휩싸였고, 나도 그 멘트에 반해서 ‘정운영 팬, 백분토론 팬’이 되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토론사회자가 할 말을 했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으며, 공직자들은 최소한 낮은 자세,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지금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
어제 MBC 피디수첩 김보슬PD가 체포되었다.
결혼 나흘 앞두고,
시어머님 될 분의 아파트 앞에서...
(오른쪽: 김보슬 피디, '오마이뉴스' 출처)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추적하는 검찰, 체포한 검찰 수사관들도 참 욕본다.
검찰의 명예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더 황당한 것은, 이 체포가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훼손 고소’에 의한 것이라니,
정확히 이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훼손될 명예가 어떤 겁니까?”
공직자가, 그것도 정책 수행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인 공직자가, 개인적 관련도 아니고 정책 수행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나 오류에 대해서 ‘명예훼손’을 따진다는 것이 가당한가? 상식있는 국민들이라면 다 갸우뚱 할 것이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기본 업무인데, 그것이 다소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정책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몰아간다면 어떤 정책비판이 가능한가? 차라리 부처에서 정정신청과 언론중재위에 중재신청을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당시의 공직자가 개인자격으로 명예훼손을 따진다? 참 그 명예가 도대체 어떤 명예인지 모르겠다. 선진화 좋아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도대체 어느 선진국에서 이렇게 하는지 예를 들어봐주면 좋겠다.
바야흐로 ‘명예훼손죄’를 유행시키는 시절이다.
그것도 살아있는 권력, 힘 있는 계층, 더 누리는 자들이 부르짖는 명예훼손죄다.
고소하면 조사하고, 검찰이 잡아간다.
그들의 뭔지 모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의와 인권은 갈 데 없어진다.
정운영 선생, 살아계시면 지금 뭐라고 하실까? 참 그리운 분이다.
20090416
김진애 포스팅
(정운영 선생은 200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진보 경제학자로 보수권 중앙일보에서 5년 여 논설위원을 하셨는데, 사람들이 이상해 하기도 하고 ‘박쥐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합리성과 공정성과 논리성, 또한 신랄하고도 명쾌한 칼럼과 저술로 보수권에서도 인정받는 경제학자셨지요.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명언을 만들기도 하셨지요. 생전에 같은 토론회에 있어보기도 했고, MC와 초대손님으로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절제하는 표현, 본질을 짚는 질문, 핵심을 짚는 멘트로 참 쿨하셨지요. 저는 정운영 선생을 이렇게 표현했었습니다.
‘까탈맞은 지식인의 통렬하고 날카로운 유머.’
‘멋진 늙은 남자’로 꼽기도 했었구요.
정운영-유시민-손석희로 이어지는 백분토론. 정운영 선생이 그렇게 스타트를 잘 하지 않으셨으면 자리잡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토론프로의 파이어니어 였지요.
MBC <피디수첩> 역시 파이어니어 프로입니다.
성역과 금기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기란, 그야말고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요. 이춘근 피디, 김보슬 피디, 그리고 모든 제작진, 언론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일이지요.
김보슬 피디님의 약혼자와 예비 시어머님, 너무 어려운 시절을 겪고 계시지만,
당당히 임하는 예비 아내, 예비 며느리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보슬 예비 신부님,
‘사랑의 촛불’ 하나 드립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결혼식은 어떻게 되나요?
나흘 앞둔 결혼식, 가능한 건지, 염려됩니다.
결혼식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체포 스테레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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