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만큼은 거론치 말라!
- Posted at 2009/01/11 09:03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정치의 가치
책 이야기 몇 번 하다가 내친 김에 ‘학벌’ 얘기 좀 하겠습니다.
미네르바 학벌 거론하는 경찰, 검찰, 거대언론, 여권 인사들의 태도가 하도 한심해서요.
우리 사회 주류들이 천박한 것은, 그저 휘황하게 보이면 당장 꼬리를 내리는 행태지요. ‘학벌, 직위, 배경, 가문, 부자, 외국 경력’ 같은 거요.
더 천박스런 것은, 근사한 학벌, 직위, 가문, 배경, 부자, 권력이 아니라면 당장 색안경 끼고 보는 거지요. 우월감 드러내고 열등감 자극하려 들지요.
‘센 자에게 꼬리 내리고 약한 자는 밟는다’ 아니겠어요?
‘사대주의’도 그 때문이고, ‘주류 편입’에 목매는 것도 그래서고, ‘출세 지상주의’도 그 때문이고, ‘줄서기’도 그 때문이고, ‘일류병’도 그 때문이고, 초중고에 ‘영재반’ 벼락치기 만들겠다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 못 다녔다고 아예 드러내놓고 멸시하던 천박스런 국회의원들도 있었지요?
이번에 긴급체포 되어 기어이 구속 수감된
‘미네르바’ 학벌을 왜 거론합니까?
백수라면 무슨 상관입니까?
(경찰이 긴급체포하며 ‘추정 미네르바’의 신원을 공개한 것은 인권침해입니다. 미네르바가 그렇게 당한다면, 국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미네르바가 맞나, 왜 긴급체포인가, 왜 마약경찰이 나섰나, ‘허위사실 유포’가 성립하나, ‘전기통신기본법’ 적용이 타당한가, 이 희한한 코미디 같은 인터넷 논객 체포 구속이 민주주의에 맞는가? 지각과 상식이 있는 언론과 정치인이라면 ‘인권, 표현의 자유, 권력 과잉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맞지요.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학벌과 현재 직업 상태와 나이를 거론함으로써 미네르바 글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려고 들고, 당장 ‘아마추어에 놀아났다’고 말하고 싶은 거고, 온라인 세계를 낮춰 보려 들고, 인터넷 논객을 불신하게 만들려는 것 아니겠어요?
‘권력의 계급장에 기댄 그들’ 답습니다.
다행히 지각 있는 정치인, 언론, 블로거 들이 이런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서 우리 사회의 기본이 아직 살아있다 싶지만, 사회 주류가 아니라는 게 우리 사회의 비애입니다.
***
미네르바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바로 그 날, 제 블로그에 제 학벌을 거론하는 댓글이 떴습니다. ‘학벌 역편견’적이라 할만한 댓글이지요. 내용인즉,
“MIT에서 공부했다니 참 부럽습니다.
그런데 김진애씨가 어떻게 정치에 입문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Socialism에 빠졌는지도 궁금합니다. [비밀댓글]”
평소 저의 여러 포스팅에 대해서 비판적인 댓글을 성의 있게 올리시는 누리꾼이십니다.(감사드립니다.) ‘알바성’이 아닌 비판성 댓글에는 저도 최대한 리플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님들 중 하나이시지요. 그런데, 이 댓글은 내용도 착잡했거니와, ‘비밀댓글’로 뜨니까 더 착잡하더군요. 이 짧은 3 문장의 댓글에 우리 사회 편견에 대한 여러 함의가 담겨있어서요.
- 첫째 문장. “MIT에서 공부했다니 참 부럽습니다.”
이건 제가 생각해도 제가 부럽습니다.^^ 어떻게 MIT 입학허가서를 받았는지 어떻게 그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는지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런 거지요. 그만큼 인생의 혜택을 받은 만큼 제대로 일하고 그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의무감도 커져야 하는 것뿐이지요.
- 둘째 문장. “그런데 김진애씨가 어떻게 정치에 입문했는지?”
이건 몇 가지 편견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경력으로 편하게 살지 뭐 하러 그 더러운 정치판에 끼느냐”(자주 듣는 말) 의미도 있겠고, “MIT는 공대인데 정치와는 거리가 먼데 아니냐?”(이것도 자주 듣는 말. MIT가 인문사회정책 풍토가 강한 대학이라는 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시계획-건축 분야의 인문적 성격을 간과하는 풍토 때문이지요.) 라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인생에 깊은 관련이 있지요. 누구나 정치를 일상적으로 합니다. 다만 현실 정치권에서 일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쉽잖은 선택이지만, 또 누군가 해야 하는 선택이지요.
공대 출신들이 평소 정치에 관심을 두고 현실정치권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것이 또한 제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학을 ‘도구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우리 사회 내공을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사(士) 우월주의’는 ‘학벌주의’와 맥락이 같지요. 그런 편견을 악용하거나 그런 편견에 안주하는 경향도 지나칩니다.
- 셋째 문장. “그리고 어떻게 Socialism에 빠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문장에는 더 많은 편견들이 녹아있지요. 일단 이념으로 가르려는 게 보이구요. 상대에게 이념 꼬리표를 달려는 게 보이구요. ‘경력도 좋은데 왜 그런 ‘Socialism’ 따위에 빠지는 멍청한 짓을 하느냐’는 조롱성 의미도 담겨있는 것 같구요.
저는 ‘사회주의(socialism)’ ’이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리버럴 성향이고, 시장이 그나마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것이 정부와 정책의 기본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소외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공공의 역할이라는 소신이 뚜렷합니다.
또한 저는 남들보다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리버럴한 가치관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명문대나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들, 좋은 지위와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이런 리버럴한 가치와 행동양식을 가지지 않는 우리 사회가 오히려 이상하고 희한하게 보입니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이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나 '정치적인 바름(PC)의 가치관'이 없이 자기 이익만을 좇고, 공동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배움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 MIT의 노암 촘스키와 폴 크루그먼
제가 MIT를 괜찮은 학교라 평가하는 것은, 노암 촘스키 교수나 폴 크루그먼 교수 같은 성찰적 지식인들이 지적 풍토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다녔던 도시건축학부에도 철학, 인류학, 공공정책학에 사회성 높은 지적 풍토가 있습니다. 기술 혁신은 이런 지적 풍토를 바탕으로 할 때 더 풍요로워지지요.
MIT에 몸 담았던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08년 노벨상 수상자로 그의 리버럴 경제학은 너무 잘 알려져 있구요. (우 사진)
노암 촘스키 교수는 탁월한 언어학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패권주의적,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비판해 온 분이지요. (좌 사진)
예컨대, 『숙명의 트라이앵글』책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민을 1,000쪽에 달하게 탐구하고 발언하셨지요. 노암 촘스키, ‘유대인’입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높은 긍지를 가지면서도 ‘패권을 얻기 위한 폭력’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것. 이것이 지식인의 ‘성찰’이지요.
계급장 떼고 ‘이슈' 자체에 열정과 배려를 가지고 개척하는 지식인의 태도이지요.
우리 사회, 정말 계급장 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학벌 등 모든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붙는 사회가 안 되면 절대로 선진 사회 될 수 없습니다.
‘미네르바’ 바로 그렇게 계급장 떼고 붙었던 거지요.
수백수천시간의 노력을 투입하여 책 독파하고 인터넷 속의 보물들을 캐어내고, 또 수백수천 시간을 들여 직접 글을 써서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어냈던 거지요. (‘50대, 증권시장 경력, 외국 경험’ 등이 잠깐 떴던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미네르바마저도 계급장을 붙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오마이뉴스>가 미네르바에게 ‘경제부 기자’ 특채 제안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직접 맨발로 현장을 뛰고 자가 공부하면서 독자에게 설득력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니까요. 기자만큼 계급장 떼고 일해야 하는 직업도 없지 않습니까?
계급장의 폐해,
우리 모두 겪어오고
지금도 겪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듯한 계급장 붙이고 온갖 수단을 통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더 높은 계급장 붙이고 난 후에 계급장에 딸린 권력 휘두르며 나라 망해먹고, 사회 황폐화시키고, 양심 말살시키고, 국민들 불행하게 만들고... ‘학벌 내세우고, 경력 내세우고, 외형 내세운 계급장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왼쪽 사진, 민생민주국민회의의 미네르바 체포 구속 항의. 출처: 오마이뉴스)
미네르바가 우리 사회에 준 여러 교훈들 중 하나,
학벌의 계급장 떼라는 것 아닐 지요?
미네르바 학벌 거론치 마십시오!
거론하는 당신들이 부끄럽습니다.
2009. 01. 11. 김진애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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